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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워도 좋다. 하지만 잘못 배우지는 말자
by 루위
2007년 12월 21일
〃Posted title : 내 눈은….

  …난 왜 저게 자꾸 '이 자식이 받은 추천' 으로 보이는걸까.  지난번 대선 직전에 네이버 지식인에서 지식인들과 후보들의 토론 어쩌구 할 때도 문국현의 답변을 보고 있는데 오른쪽 위에 '이 자식이 받은 추천' 을 보고 시껍했던 적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 '자식' 이라니.  풉.
by 루위 | 2007/12/21 14:35 | 가볍게 팝콘 | 트랙백 | 덧글(1)
2007년 12월 19일
〃Posted title : 폐쇄의 사유, 그리고 약속대로 재오픈

  후….  사실 블로그를 폐쇄했던 것은 군의 압력 때문이었다.

  예전 '군복의 비밀을 알려주마' 포스팅 때 올렸던 사진이 화근이 되어, 기무대에서는 그 사진을 보고 내가 있던 부대 내에서 찍은 것이라고 판단, 부대에 삭제 요청을 했었고 어째서인지 도무지 이해는 안가지만 해당 대상자의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난 그 사진이 부대 내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휴가를 다녀와서 갑자기 접한 소식이 내가 기무대에 걸렸다는 것이다.  심장이 덜컥했다.

  간부들 모두 별 것 아니라고 안심시켰는데, 글을 보더니 군 비방이랜다.  …난 맹세코 내 블로그에 올린 글 중 군대와 관련된 글에서 거짓을 말한 적은 없다.  물론 내가 느낀 바를 서술한 것이긴 하지만, 이는 그것 대로 사실인 것이다.  결국 이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어이가 없지 않나?

  더욱 어이없는 것은 심판과정.  내가 그 간 블로그에 써 놓은 글이 방대하다면 방대하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기에, 어디서 작성했는가에 대해서 말하기가 크게 곤란했다.  야근을 하며 남는 시간에 글을 쓰고 간부 몰래 인터넷 PC를 사용해 올렸다는 내용을 당당히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 대신 올려달라 했다는 것인데, 그것 또한 말이 안되는 것이 이 곳의 글은 대강 평균적으로 A4용지 2장 정도는 우습게 나오는 정도의 양이라 난 굉장한 다작의 작가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사무실 인터넷 PC를 사용했노라고.

  결과적으로는 원래 화두인 인터넷에의 군 관련 사진 게재라는 것을 한참 벗어나, 나의 처벌 원인은 지시불이행으로 결정됐다.  왜인고 하니, 마침 대대장 지시로 사무실 인터넷 PC를 사용하지 말라는 조항이 있었던게라.  하지만 나는 업무상 인터넷 PC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이고, 이는 대개의 사무실에서 간부들이 개인적인 업무편의성을 위해 병사들에게 위임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처사인 것이다.  …비록 내가 매우 사적인 일로 인터넷 PC를 이용하긴 했지만, 군 내부에서 병사들의 '복지'를 위해 운영하는 사이버 지식정보방 이라는 곳에서는 장문의 글을 올릴 수 없기 때문에 블로그 포스팅은 커녕 싸이월드에 일기 조차 쓰지 못하는 형편이라 어쩔 수 없었던 사실이다.  또한 당시의 나 -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 는 어떠한 지적 유희에 매우 목말라있었고, 블로깅은 그걸 해소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단비같은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난 징계위원회에서 인터넷 PC 사용을 방치한 간부도 직무태만으로 처벌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매우 뜬금없으며 황당하지만 나름 실리있고 그 결과 나에게 엄청난 피해가 돌아올 무시무시한 발언을 들은 뒤 전신전력을 다하여 이 일은 나 혼자 자행한 것이라는 진술을 만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떨어진 처벌은 휴가제한 5일 및 블로그 전 게시물 삭제.

  …생각해보라.  휴가제한 5일이면 군 내부에서는 굉장히 중형에 속한다.  이건 거의 영창 5일과 맞먹는 그런 수준의 처벌인 것이다.  게다가 전 게시물 삭제라니!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이라면, 당신의 사고와 감정이 깃든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글을 지우라 하면 흔쾌히, 그리고 쉽사리 글을 삭제해 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뇌에 백업되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최소한 나의 입장에 있어서 글이라는 것은 당시의 즉흥적인 언어적 감각의 작용으로 풀어지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요소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원본을 보고 필사하지 않는 한 이 세상에 똑같은 글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실수와 창작의 마법이 뒤섞여 이루어낸 거의 마법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물며 그 안에는 나의 감정과 사상이 깃들어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생각의 편린이자 분신이다.  이를 어떻게 지우겠는가?  임신한 어머니더러 자식은 또 나으면 되니까 지금 뱃속에 있는 자식을, 혹은 이미 나아서 기르고 있는 자식을 없애보라 해라.  과연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할까?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글을 은폐하고 블로그를 폐쇄하는 선에서 - 물론 이는 내가 자의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꼭 지우라고 감시자까지 붙여놓은 상황에서 정말 점 찍어서 지우라는 글들은 지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내 글 중에서도 정말 쓸데 없는 글, 그러니까 내 자신의 판단적 기준에 비해서 비교적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글들만을 지우려고 노력했고, 그러한 노력은 다소 결실을 맺었다 - 결론을 맺을 수 있었고, 징계는 그대로 휴가제한 5일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젠장.

  하지만, 이제 난 전역했고 자유인이다.  이런 부조리함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조직에서 벗어난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다.  앞으로는 정말 쓰고싶은 글, 생각하고 싶었던 것 들을 마구 써나갈 작정이다.

  자유인이라 기쁘다.

by 루위 | 2007/12/19 02:49 | 가볍게 팝콘 | 트랙백 | 덧글(5)
2007년 04월 08일
〃Posted title : 잠정적 폐쇄

  환경과 신분과 직업에 힘입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사실을 사실이라 하지 못하는 바, 이에 블로그를 폐쇄합니다.

  정확한 폐쇄기한은 12월 18일까지.

  그동안 모두 안녕하고 건강하십시오.

by 르위 | 2007/04/08 13:20 | 가볍게 팝콘 | 트랙백 | 덧글(7)
2007년 03월 10일
〃Posted title : 파리는 봄을 타고
+
   <파리>
                  - 원태연
  파리가 난다
  붕붕붕.

  난다고 다 새냐
  킬킬킬….


  내가 처음으로 산 시집 『원태연 알레르기』에 있는 「파리」라는 시다.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원태연 씨에 대한 판단이 '그딴 것도 시냐' 혹은 '참신하다'의 두 가지로 나뉜다는데, 나는 그냥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상당히 직관적이라 대한민국 의무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복잡한 은유와 기타등등의 미묘한 어학적 기법들로 점철되어 작가의 깊은 고뇌나 그들만의 찬탄을 읊는 어떠한 시들과는 달리 작가의 심중을 이해하려고 머리 빠지게 고민하여 숨겨진 의미를 찾는 작가와 독자의 전쟁을 겪지 않고서도 시를 즐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글쎄, 시라는게 극도로 함축된 문학이다보니 그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노력을 좀 해야하겠지만, 이게 심해지면 어문학적 변태들을 제외하고는 거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리지 아닐까.  사실 본인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이든 해석하기 나름인 것을.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라 파리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
  요즘들어 따듯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휴가다녀온 한 후임의 말을 빌자면 '기온이 올라갈수록 여자들의 치마길이도 짧아지는'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거의 봄이란다.  여름과 겨울 두 계절밖에 없는 군대이지만(실제로 군의 계절기 구성도 동절기 하절기의 두 개밖에 없다.  저건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처에 만연한 봄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 뒷뜰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는데, 봄이나 여름때는 보통 그 언덕에 나있는 계단에 앉아서 가끔 쉬곤 한다.  이 계단의 재질이 콘크리트이다보니 추울 때는 도무지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지라, 이 계단에 앉을 때가 되면 햇살이 어느 정도 돌을 따스하게 달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거나 돌의 차가운 감촉으로 몸에 비산하는 열을 식히고자 함이기 때문에 비로소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3월달이 되니 그동안 겨울같지도 않던 겨울 - 실례로, 올 겨울에는 제설을 3번 밖에 안했다.  작년의 그 무수한 횟수를 들어볼 때 천만 다행이다 - 이 슬금슬금 뒷걸음치다가 완전히 봄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나 싶다.  이렇게 그 뒷동산 돌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노인같은 한담을 나눌 수 있다니 말이다.

+
  그렇게 녹차를 홀짝이며 "날이 참 따숩네."  "그녀는 잘 있을라나…."같이 궁상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국지적인 바람이 불었다.  손등에만 부는 바람이 미묘하여 시선을 내려보니 언젠가 본 듯한 익숙한, 까만 점 하나가 내 손등에 올라타있었다.  하도 오랬동안 못봐서 얼굴을 잊어버릴까 싶었더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것의 이름이 파리라는 것을 생각해내는데는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았다.

  요즘들어 날이 많이 따듯하기는 했어도 벌써 파리가 나오다니.  일전에 화장실에 모기가 있어 중요한 볼일을 보는 와중에 허벅지를 물렸다며 공포에 떨고있는 아이를 보고 한껏 비웃어줬는데, 파리를 보고나니 그것이 실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가 있으면 모기도 있겠군.

                    [본좌 도착!]

  그 녀석은 얼마 전에 태어난 듯, 한 여름의 보기싫은 파리들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비대한 몸집의 녀석은 아니었다.  이것이 과연 파리 목에 속하는 그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날씬하여 오히려 빈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녀석은 무엇을 그리도 먹어댔는지 비대한 몸집을 가누지 못하는 여름 파리와는 달랐다.  나른한듯 느린 속도로 뒷다리를 슬금슬금 비비고 있던 그 녀석은 내가 한동안 바라보고있자 내 눈동자에서 뭔가 복잡미묘한 감정을 알아챈 것인지 날개를 펴고 한가롭게 날아올랐다.

  파리가 날아가는 하늘은 은은한 크림색이었고, 군데군데 새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있었다.  그 밑에 보이는 산은 울긋불긋한 가운데 군데군데 녹색기운이 나타나있다.  음, 완연한 봄이다.

+
  이번 겨울의 양치기 소년 기상청의 문제도 있고 해서 한동안 그다지 일기예보에 신경쓰지 않고 지냈다.  간혹 우연찮게 접하는 소식들에 대해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었는데, 이 정도의 날씨라면 그와 연관하여 벌어질 일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3월 5일의 아침, 비가 내려 점호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화자를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가 이 기쁜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어 한담과 연기로 발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몇몇의 사람들을 데리고 흡연장소인 쉼터로 향했다.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마구 오염시키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드는 아수라장의 굉음에 귀를 귀울이고 있노라니 역시 비오는 아침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소리가 약간 이상하긴 하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점호를 제끼고 2시간여의 자유시간을 획득한 것이다.

  저 멀리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아해들의 한담이 들린다.  "비가 아니야.  우박이야 우박."  아, 평화롭…?  우박이라니.  아침 공기가 유달리 차긴 했으나 비때문이려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재빨리 올라가서 아침 뉴스를 틀어보니 글쎄, 이번 주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추운 날씨가 지속될 것이라는 과학교과서 85페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자면, 그날 12시께까지 우박이 내렸고,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는 구리구리한 하늘을 배경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새벽내내 비가 내린 덕에 눈이 쌓이기 전에 녹아버렸는지라 제설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음 날 우리가 마이크가 고장난 관계로 육성으로 목이 터져라 기상이라 외치는 일직하사의 목소리에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새벽 4시였고, 우리는 해 뜨면 바로 녹아버릴듯 얄궂게 얼마 쌓이지도 않은 싸락눈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며 근무지원단 총사령의 상식구조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을 나눴다.

[새벽에 일어나 눈치우는 기분은 아는 사람만 안다]

  과히 일찍 일어난 탓에 굉장히 길어질 하루를 예상하며 사무실에 올라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벽의 소동이 영 답답한지라 바람이라도 쐬며 기분전환을 시도하기 위해 대추차 한 잔을 타서 밖으로 나와 언제나 담배를 피는 그 계단 근처에 섰다.  이곳을 애용하는 이유는 배수로가 뚫려있어 달리 꽁초 버릴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서리맞은 듯 하얀 바닥에 검은 점이 있었다.  얄쌍한 정도와 사이즈로 볼 때 어제 그 파리가 틀림없다.  그 파리는 그렇게 생기 없는 눈동자를 부릅 뜨고 홀쭉한 배를 하늘을 향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은 채 온 몸을 움츠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적당한 욕을 흘리며 파리의 시체를 짓이겼다.

  주변을 둘러봤다.  눈이 하얗게 뒤덮인 수많은 산들, 눈꽃이 핀 나뭇가지들.  평소라면 절경이라 하겠지만 지금은 3월이다.

  파리는 얼어죽었다.  봄은 들렀다 갔다.  여긴 겨울이다.

+
  무슨 쌀보리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봄의 변덕스러운 날씨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그 날 뉴스를 보니 한중일 삼국에서는 차가 뒤집히고 철근이 꺾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지역적으로 온난기층과 한랭기층이 뒤집혀 그 영향으로 외부 기단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강풍이 발생한 것이라는데.

  3월 7일의 아침 뉴스에서는 이 모든 사건들을 태평스레 '꽃샘추위'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게 꽃샘추위면 겨울이 한 번만 더 시샘했다간 지구가 멸망하겠다.  지금 절기는 겨울이고 일전의 따스했던 나날들이 이상기후였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파리가 타고 온 봄은 파리목숨처럼 위태롭다가 하루살이처럼 짧게 갔다.  마치 매정한 여인의 변덕처럼 왔다간 봄에 의해 배신당하여 절망과 울분으로 가득한 나는 누군가가 이곳의 기후는 어떠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겨울이라 절규할 수 있으리라.
[내일 모레까지 꽃샘추위가 지속될 전망입니다]
by 르위 | 2007/03/10 11:56 | 인생에 주석 | 트랙백 | 덧글(2)
2007년 03월 10일
〃Posted title : 사무용품의 역습
+
  Jackass라는 투철한 실험정신에 입각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가 있다.  아니, 사실 이건 영화라기보다는 UCC 내지는 셀프카메라에 더 가깝지만, 엄연히 정식으로 출판된 간행물이며 전체적으로 영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므로 편의상 영화라고 부르자.

  이 영화는 제정신으로는 도무지 행하지 못할법한 일들을 일상 생활에서 시행함으로써 대리경험과 만족의 쾌감을 주고 있는데, 그중 당당하게 하나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Papercut이라는 주제다.  Papercut은 말 그대로 종이에 베이는 것인데, 원리는 베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라는 재질의 특성상 보다 강력한 마찰력을 동반하므로 상처부위가 마찰열에 휩쌓이고 고통이 훨씬 심한 것이 특징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설명을 읽고 언젠가 겪어봤을 그 극심한 고통을 상기하며 몸부림칠 것이다.

          [이런 개살구!]
+
  몇일 전, 개념없는 양주병원에서 또 병상일지를 낱장으로 보내왔다.  병상일지는 보통 20~30장이 넘고 많은 것은 200장이 되기도 하는데, 이걸 클립이나 스테이플러로 찝지 않고 보냈던 것이다.  봉투를 뜯어 꺼낸 공문에는 몇 개의 병상일지를 같이 보냈다고 했으므로 주욱 훑어보면서 병상일지의 경계면을 추려내는 수 밖에 없었다.

  투덜거리면서 낱장들을 꺼내기 위해 봉투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예?" 라고 하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몸을 돌리는 반동으로 봉투에서 손이 바깥으로 미끌어져나왔다.  갑자기 느껴지는 왼손 엄지손가락 등 부분의 화끈한 느낌!

[!]

  종잇날에 그 부분이 닿아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유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건만, 벌어져 속살이 보이는 것을 보니 갑자기 꼬리뼈 근처가 찌릿해졌다.

+
  다행히 병상일지는 잘 추려냈고 이제 남은 것은 이것을 합철하는 것 뿐.  스테이플러를 찍을 때는 종이를 잘 모아 흐트러지지 않게 찍어야 하는데, 이건 나중에 이것들을 주욱 훑으며 일해야 하는 내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모아놓고 스테이플러를 가볍게 눌러줬다.  어긋나는 느낌과 함께 비뚤어진 스테이플러의 심이 나를 반겨줬고, 그런 일이 10번 넘게 반복되자 드디어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스테이플러를 눌러대는 바람에 애써 모아놓은 종잇장들도 흐트러져 비뚤어졌다.  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모아 가지런히 하기 위해 책상에 탁탁 치려는데, 극도의 분노와 흥분에 휩쌓여있던 나는 힘조절에 실패하여 종이를 쥔 손이 급속도로 천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종이를 느슨히 잡고 있어서 종이가 손가락 에서 미끌어지는 것을 느꼈는지라 공중에 그들을 흩뿌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재빨리 손에 힘을 주었건만, 그것은 손가락으로 움켜쥐는 것이 아닌 손을 오무리는 형태로 발현됐다.  의지의 배반이여.
[!!]

  종이의 속도는 이미 상당하여 충분히 날 부분으로 무언가를 벨 수 있는 상태.  벌어진 상처에서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모여들다가 결국 한 줄기 선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번엔 손바닥을 베어버렸다.  울 것 같았다.

+
  내가 급격한 우울감에 휩쌓였다고 해도 나에게 정신정동장애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부당하다.  보통 한번 베이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져서 그 날에는 또 베이는 일이 없기 마련인데, 벌써 2번이나 베이고 모든 사무기기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다.  나와 5년 터울인 늙은 복사기는 종이를 꾸역꾸역 뱃속에 깔아놓아 도무지 뱉을 생각을 안하고, 젊디 젊은 고속프린터는 뭐가 그리 신났는지 흑백인쇄를 하랬는데도 다 쓴 컬러 토너를 탈탈 털어 종이에 색을 흩뿌리고 있다.  스테이플러는 투쟁중이고 고무줄은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

  온갖 것에 농락당한 나는 무생물로부터의 핍박에 힘입어 8할의 의욕을 잃었다.  솔리테어를 하며 잠시 심정을 고르다가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다시 일하기로 했다.  오늘 미뤄놓은 10건의 민원은 내일 10통의 항의전화가 되어 300분의 시간을 진땀 흘리고 폭언에 시달리며 보내야 하는 결과를 낳는 법이다.


[마치 다굴당하는 것 같은 이 느낌] 
+
  몇개의 군 지원 사령부에서 보내오는 서류들은 대개 그 양이 상당한지라 보통의 병원이나 보훈처의 서류들같이 종이봉투에 담겨 올 레벨이 아니다.  군대에서 일하며 느낀 것이지만 어떠한 사물이든 하나 이상의 용도를 가질 수 있는 법이다.  그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들은 언제나 다 쓴 A4박스에 담겨 거체를 흔들며 서서히 압박감을 행사한다.

  그 A4 박스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자주 접하는 날개 형태로 위와 밑을 봉하게 되어있는 형태의 박스로 대형마트나 우체국 등에서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납공간과 뚜껑이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는 수납장 형식의 박스다.

  이번에 3군지사에서 도착한 서류상자는 전자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보통 군 내부에서 유통되는 문서들은 경제성을 이유로 군 내 수발계통을 이용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매우 험난한 취급을 당하므로 대개의 서류들은 과대포장 하는것이 상례다.  박스가 찢어지거나 뚜껑이 날아가서 서류가 유실되기라도 하면 순전히 보낸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3군지사의 서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연결부위마다 테잎이 3~4겹으로 칭칭 감겨 있었기에 이를 떼는데 꽤나 고생했다.  군대에서 짐을 싸다보면 칼로만은 풀 수 없는 복잡미묘한 포장이 가능해지고 나 또한 그렇게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별로 그쪽에 할 말은 없었다.  사람은 환경이 만들어가는거다.

  마지막 봉인이 꽤나 강력한 접착력으로 저항하고 있었기에 온 힘을 다해 뜯어내는 수 밖에 없었다.  한 쪽 뚜껑은 이미 열린 상태라 그것이 덜렁거리도록 놔두고 반대쪽을 봉하고 있는 테잎을 잡고 있는 힘껏 위로 당기는 순간, 내 엄지와 검지 사이의 부분에 화끈하고 강력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얀 사무실 천장을 배경으로 비산하는 핏방울들.
[!!!]

  사무실에는 나의 애절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
  골판지라는 것은 대개 두껍기 마련인지라 도무지 무언가를 베는 용도로 사용될 수 없을듯 싶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배웠듯 물리법칙에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등식의 경우 한 쪽의 수치라 올라가면 반대쪽의 수치도 덩달아 올라가기 마련이다.  내 손이 움직이는 속도는 골판지에 상대적인 속도를 부여하여 그 강도와 더불어 힘을 가지게 했다.  방바닥에 손등을 빠르고 길게 죽 문질러보면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 생긴 것을 보면 알겠지만, 골판지의 단면은 베이스가 되는 판 두 장과 그 사이를 이어주는, 우리가 골판지라 이름붙이게 된 이유가 되는 구불구불한 종이 한 판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골판지에 베이는 느낌은 상당히 우둘투둘하고 불쾌하기 그지 없으며, 베일 때 발생하는 열과 고통은 종이의 그것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초월한다 하겠다.  궂이 비슷한 것을 찾자면 톱이 무언가를 썰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바로 이 부분]

  상자의 두께만큼 살이 뜯겨나간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창피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홀로 그 고통을 달랬다.

+
  아무래도 마가 씌운 날이 아니었을까.  이대로 사무실에서 일을 계속 하다가는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 적진 한 가운데 침투하여 그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이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도무지 진정이 안되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밖에서 담배 한 대를 깊이 빨아들이고 돌아오자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오기 전에 뒤를 돌아봤다.  사무실은 그 좁은 입구를 황망히 벌려놓고 음습한 기운을 마구 뿜어대고 있었다.  도대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사무기기들은 나를 핍박한 것일까.

  미스테리를 품에 안고 퇴근했다.

[Declare war to human!]
by 르위 | 2007/03/10 11:43 | 인생에 주석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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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끄적.
순결한람부탄님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국에 갑니다.
기한은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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